대학 혁신의 핵심
전북 고창군 한우 농가 축사 외벽에 붙은 인증 마크. 정부의 '깨끗한 축산농장' 인증 옆에 전북대 저탄소 한우 협력농장이라는 인증 마크가 붙어있다. 박소영 기자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0'(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산업계가 각종 '넷제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지난달 초 농림축산식품부가 국내 최초로 저탄소 인증을 받은 한우 농가 27곳을 뽑았다. 이 인증은 주로 ①탄소가 적게 나오는 '저메탄 사료'로 키우는 한우와 ②사육 기간을 단축해 탄소 배출량을 줄인 한우를 대상으로 주어졌다. 수호농장을 비롯한 고창의 한우 농가 네 곳은 사육 기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인증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전북 고창에서 사육 개월을 줄인 '저탄소 한우'로 이번에 정부 인증을 받은 최준수 수호농장 대표가 저탄소 한우 사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소영 기자
그는 사료를 조금 먹어도 잘 자라고 빨리 커서 출하 가능한 소로 품종 개량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최 대표를 포함해 주변에 있는 젊은 한우 농장주들은 10년 전부터 '족보'를 보고 우수한 종자끼리 교배시키는 전통 방식의 육종·품종 개량을 해 왔다.
그러다 2019년 저탄소 한우를 연구하던 이학교 전북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를 만나 '사육 개월 수 당기기'는 탄력을 받았다. 이 교수팀은 소의 털을 뽑은 뒤 유전자·유전체 연구를 통해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유전자를 찾을 수 있었다. 유전체 검사는 모든 번식우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농가들은 수천만 원을 과감히 투자해 검사 비용을 댔다. 이를 통해 찾은 번식우의 교배로 사육 개월 수는 현재 평균 25개월까지 당겨졌고 지금은 고창에서 '청춘한우'라는 브랜드로 저탄소 한우가 한 달에 약 40두씩 시장으로 나간다.
예전보다 짧은 기간 동안 소를 기르니 사료도 덜 나갔다. 최 대표는 "다 큰 소는 하루에 사료 8~10kg을 먹는데 5개월만 사육 기간을 줄여도 한 마리당 1.2~1.5톤의 사료를 아낄 수 있다"며 "실제로 한 마리당 사룟값을 150만 원 정도 절약했다"고 말했다. 저탄소 한우를 연구해 온 김문석 중우농장 대표는 "2년 전부터 25개월만 길러도 30개월 키운 소만큼 고기 양을 얻을 수 있다"며 "다음 목표는 (도축 시점을) 20개월로 당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다 지난해 전북대 이학교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소의 유전체 검사로 축산 탄소 감축량을 추적,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제로 사육 기간을 줄인 한우가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인증할 수 있게 되면서 이들 농가의 한우가 '저탄소 한우'라는 친환경 보증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저탄소 한우는 실제로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이 교수는 "평균 한우 도체중(도살한 소의 가죽, 머리, 발목, 내장 따위를 떼어낸 체중) 1kg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3.01kg"이라며 "반면 이곳의 한우는 20%가량 줄어든 10kg 정도의 온실가스만 내보낸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창의 저탄소 한우 농가 네 곳은 이번 농식품부의 저탄소 인증을 받은 곳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7일 전북 고창군 고창부안축협에서 이학교 전북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가 저탄소 한우 인증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소영 기자
평균보다 다섯 달 덜 키운 소가 상품성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걱정도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저탄소 한우는 도축 시점이 빨라 육질이 연한 것이 특징이다. 안웅 롯데백화점 축산 바이어는 "고창 저탄소 한우는 90% 이상이 1등급 이상을 받고 1++ 등급 출현율도 높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유통업계 처음으로 평균 25개월 키운 한우를 저탄소 한우로 내세워 시장에 처음 내놓았다. 이색 한우를 찾아 전국을 돌던 안웅 바이어가 중간 도매인으로부터 소문을 듣고 고창 한우 농가와 이학교 교수를 찾은 것이 지난해 여름이었다. 안 바이어는 "전북대에서 지난해 축산 탄소 감축량을 추적,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육 기간을 줄인 한우가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인증했다"며 "그때 저탄소 한우로 판매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설을 맞아 전북대와 고창부안축협과 손잡고 저탄소 한우 1,000세트를 내놓아 모두 팔았다. 3월 서울 소공동 본점과 잠실점 등을 시작으로 현재 10개 점포에서 상시 판매하고 있다. 안 바이어는 "저탄소 한우는 가격도 일반 한우와 비슷해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저탄소 한우 정부 인증을 받은 것을 맞아 11일부터 전국 18개 롯데백화점에서 농식품부와 함께 전북 고창과 전남 진도의 '저탄소 한우'를 최대 40% 할인해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풀무원의 친환경 식품 유통사 올가홀푸드도 '저탄소 한우'를 지난달 말 출시했다. 올가홀푸드가 판매하는 저탄소 한우는 △농업 부산물을 사료로 쓰고 △농장 발생 분뇨는 발효 후 지역 농가의 비료로 활용하며 △태양광 시설로 탄소 배출을 저감해 정부의 저탄소 축산물 인증을 받은 전남 진도의 한우 농장 한 곳의 한우다. 올가홀푸드 측은 "소비자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치소비 문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친환경 먹거리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